
7일 오전, 베트남 하노이 바딘의 국회의사당. 출석 의원 495명이 일제히 앞에 놓인 버튼을 눌렀다. 찬성 495, 반대 0, 기권 0.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국가주석으로 선출되는 순간이었다.
베트남 정치를 이해하는 열쇠로 빠지지 않고 꼽히는 것이 ‘Tứ trụ’, 즉 ‘사주(4기둥)’이다. 서기장·국가주석·총리·국회의장이 권력을 나눠 가지던 ‘4기둥’ 체제는 베트남 정치의 핵심 원리다. 공산당 1당 체제이면서도 1인 독재를 견제하는 장치로, 베트남 정치의 고유한 특징으로 꼽혀왔다.
건국 지도자 호치민 이후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정식 임기 동안 겸직하는 것은 럼 서기장의 사례가 처음이다. 지난해 9월 정치국이 상임서기를 ‘핵심 지도자’ 그룹에 추가해 ‘5인 체제’로 확대한 바 있는데, 럼 서기장의 국가주석 겸직으로 핵심 지도자는 다시 4명이 됐다. 하지만 권력의 무게추가 럼 서기장에게 크게 기운 만큼 사실상 ‘3기둥 4인 체제’가 된 셈이다.
결과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제14차 전당대회 전부터 “어차피 (차기) 서기장은 또 럼”이란 말이 돌았고, 전당대회 폐막 직전 선출된 정치국원 명단을 보곤 “어차피 (차기) 국가주석도 또 럼”임을 짐작했다. 베트남 국회도 이미 지난 달에 당의 결정을 추인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것은 그 뒤에 이어진 한국 언론의 반응이었다. ‘제2의 시진핑’, ‘시진핑급 막강 권한’이란 수식어가 붙었고, 하루 만에 또 럼 = 시진핑이란 등식이 성립됐다. 진짜 그럴까?
반복되는 시진핑 비유
형식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에서 시진핑은 2012년부터 공산당 총서기·국가주석을 겸직해왔다. 또 럼도 이제 서기장·국가주석을 겸한다. 구조가 닮았다.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며 권력 기반을 다진 경로도 표면적으로 유사하다.
그리고 한국과 서방의 독자들에게 베트남 정치는 낯선 영역이다. 정치국(Bộ Chính trị)이 뭔지, 4개의 기둥(Tứ trụ: 서기장,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가 뭔지, 중앙위원회가 왜 중요한지 일일이 설명하려면 지면이 모자란다. 반면 ‘시진핑’은 이미 ‘공산당 1인 권력 집중’의 대명사가 돼 있다. 어차피 둘 다 공산당이 1당 지배를 하는 나라니 기자 입장에선 가장 접근 가능한, 쉬운 프레임이다. 나도 이해한다. 제한된 지면에 복잡한 현실을 담으려면 독자가 아는 프레임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이 분석이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휙 쳐버리는 라벨링이라는 점이다.
시진핑이 실제로 한 것
시진핑의 권력을 이해하려면 직위 목록이 아니라 그가 바꾼 제도를 봐야 한다.
2017년, 시진핑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당장(黨章)에 삽입했다. 살아 있는 지도자의 이름이 당장에 들어간 것은 마오쩌둥 이후 처음이었다. 2018년에는 헌법을 개정해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아예 삭제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2,958명 중 반대 2표, 기권 3표. 헌법에 박혀 있던 ‘연임 1회’ 제한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는 69세에 3연임을 확정했다. 장쩌민 시대부터 20년간 지켜지던 ’67세는 올라가고 68세는 내려간다(칠상팔하·七上八下)’는 불문율을 폐기한 것이다.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을 전원 자기 사람으로 채웠다. 경쟁 세력이던 공청단파를 조직적으로 퇴출시켰다.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평가들이 쏟아진 이유다.
서울대의 조영남 교수는 시진핑의 권력원을 ‘제도 권위'(직위에서 나오는 권력)와 ‘개인 권위'(시대의 개창자로서의 지위에서 나오는 권력)로 구분한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제도 권위만을 가진 지도자였다. 총서기 직위에서 권력이 나왔고, 물러나면 권력도 함께 갔다. 시진핑은 다르다. ‘3차 역사결의'(2021)를 통해 자신의 집권기를 마오쩌둥·덩샤오핑에 버금가는 ‘신시대’로 공인받았고, ‘시진핑 사상’을 당장과 헌법에 각인했다. 시진핑이 물러나더라도 그의 사상과 ‘신시대’ 규정은 제도 안에 남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진핑조차 못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조영남 교수에 따르면 시진핑은 20차 당대회에서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 — 시진핑의 핵심 지위 확립과 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 확립 — 을 당장에 삽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공산당 발표 문건만 읽으면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개정된 당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공산당 중앙 주석(主席) 제도의 부활도 당정 간부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시진핑의 막강한 권력으로도 제도 변경에는 당내 저항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 럼이 한 것, 하지 않은 것
이 기준선에서 또 럼을 보면 그림이 확연히 달라진다.
또 럼은 서기장과 국가주석을 겸직했다. 63개 성(省)·시를 34개로 통폐합하는 대규모 행정개혁을 밀어붙였다. 반부패 캠페인으로 정적을 제거했다. 14차 전당대회에서 68세임에도 ‘특례(trường hợp đặc biệt)’를 적용받아 정년 규정을 넘겼다.
하지만 또 럼은 헌법이든 당 조례든 임기 제한을 삭제하지 않았다. ‘또 럼 사상’을 당장이나 헌법에 삽입하지 않았다. 경쟁 파벌을 조직적으로 축출하지 않았다. 당 조례의 ‘집체영도, 개인분담(tập thể lãnh đạo, cá nhân phụ trách)’ 원칙은 그대로다.
또 럼은 명확히 ‘제도 권위만 보유한’ 지도자다. 서기장과 국가주석이라는 직위에서 권력이 나올 뿐, ‘또 럼 시대’나 ‘또 럼 사상’에 해당하는 개인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물러나면 직위는 후임에게 넘어가고, 개인적 유산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비유하면 이렇다. 시진핑은 카드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꾼 플레이어다. 임기 제한이라는 규칙을 삭제하고, 세대교체라는 규칙을 폐기하고, 차액선거라는 규칙을 무력화했다. 규칙을 바꿔버리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그 규칙으로 그를 견제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또 럼은 기존 규칙 안에서 가장 유리한 카드 조합을 확보한 플레이어다. 서기장 카드와 국가주석 카드를 동시에 쥐었다. 하지만 임기 제한, 정년, 중앙위원회 투표, 파벌 간 교섭이라는 게임의 규칙은 바뀌지 않았다.
군부와의 협상
또 럼이 서기장 연임과 국가주석을 겸직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군부다. 소식통에 따르면 군부는 또 럼의 국가주석 겸직에 대해 고위 장교 승진에 대한 광범위한 자율권 유지를 조건으로 협상했단다. 이런 맥락으로 로이터도 보도한 바 있다. 그러니까 국가주석직을 내주는 대가로 세이프가드를 요구한 것이다. 판 반 장(Phan Văn Giang) 국방부 장관은 14기 정치국 서열 7위를 유지했고, 중앙위원회 200명(정·후보위원) 중 군부 인사는 약 25명에 달한다. 공안 출신이 약 7명인 것과 비교하면 군부의 수적 우위가 뚜렷하다. 그리고 장 장관은 이번 16대 국회에서 국방부 장관직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부총리직까지 맡았다.

시진핑 치하의 중국에서 이런 교섭이 가능했을까? 시진핑은 취임 직후부터 반부패 운동으로 군 고위층을 갈아치웠다.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궈보슝이 적발됐고, 군은 완전히 시진핑 개인에 종속됐다. 교섭이 아니라 일방적 장악이었다. 또 럼의 겸직은 교섭의 산물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시진핑급’이라는 표현은 과하다.
집단지도체제는 끝났나
더 디플로맷은 7일 자 기사에서 단정적으로 “집단지도체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썼다. 알렉산더 뷔빙(Alexander Vuving)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센터 교수도 로이터에 “집단지도를 포함해 과거의 많은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뉴노멀’로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칼 세이어(Carl Thayer)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명예교수는 “또 럼은 동등한 자들 중의 첫째(first among equals)이지만, 정치국에 대해 답변할 의무가 있다(answerable to the Politburo)”고 구분했다. 응우옌 칵 장(Nguyễn Khắc Giang) ISEAS 연구원은 블룸버그에 “국가주석직은 단독으로는 의전적 성격이 강하지만, 서기장과 결합하면 정치적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면서도 “진정한 시험대는 다른 당내 파벌로부터 순응이 아닌 실질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라고 덧붙였다.
내 판단은 이렇다. 집단지도체제가 ‘끝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건재하다’고 하기에도 아리송하다.
일단 당 조례의 집체영도 원칙은 문서상 변함없다. 2001년에는 중앙위원회가 정치국의 결정을 뒤집고 서기장 레 카 피에우(Lê Khả Phiêu)를 해임한 전례가 있다. 14기 중앙위원회는 비밀투표를 실질적으로 운용한다. 군부는 여전히 조직적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4기둥’이 ‘3기둥’이 됐다. 또 럼은 국회에 “자기 역할에 충실하라(đúng vai, thuộc bài)”며 입법부의 독자성을 제한하고 있다. 브엉 딘 후에(Vương Đình Huệ) 전 국회의장 시절, 국회가 정부와 경쟁적으로 권한을 확대하자, 이를 ‘행정화’라고 규정하고 금지시켰다. 2023~2024년 반부패 캠페인으로 응우옌 쑤언 푹 국가주석, 보반트엉 국가주석, 브엉 딘 후에 국회의장과 쯔엉 티 마이 당 상임서기가 연이어 사임했다. 낙마한 이 ‘경쟁자’들은 이젠 국가의 주요 행사에 나타나지도 못한다.
그러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집단지도체제의 ‘원칙’은 남아 있다. 당 조례의 집체영도 조항은 그대로고, 중앙위원회의 비밀투표 제도도 건재하다. 그러나 그 원칙을 작동시키는 복수의 경쟁 파벌, 독립적 국회, 대등하게 견제할 수 있는 다른 지도자 같은 조건들이 약화되고 있다면?
‘특례’라는 느린 침식
가장 주시해야 할 것은 ‘특례(trường hợp đặc biệt)’의 반복이다.
베트남 공산당에서 서기장의 임기 제한과 정년 규정은 정치국 규정 Quy định 214-QĐ/TW에 명시돼 있다. 이 규정은 헌법이나 당 규약 수준의 성문 규범은 아니다. 조영남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최고 지도부 간의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만들어진 관습법”에 가깝다. 법적 위계로는 약하지만, 파벌 간 균형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로서 실질적 구속력을 갖는다.
하지만 이 관습법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2021년, 13차 전당대회. 77세의 응우옌 푸 쫑(Nguyễn Phú Trọng) 서기장은 연령 제한도 넘긴 나이에 3연임에 성공했다. ‘예외 중의 예외’로 정당화됐다.
5년 뒤인 2026년, 14차 전당대회에선 또 럼 연령 제한(65세)을 초과한 68세의 또 럼 역시 이 특례를 적용 받았다. 같은 나이의 르엉 끄엉 국가 주석은 이 특례를 인정받지 못하고 물러났다. 임기 내내 땀 뻘뻘 흘리며 바쁘게 돌아다녔던 팜 민 찐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특례는 (이름처럼)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규칙은 아니다. 이 특례가 정치적 교섭의 산물로 기능하면서 권력을 가진 자만 면제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규정대로 퇴장해버린다면? 규정이 존재하되 강자만 면제받는 구조가 반복되면 규정은 약자를 통제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강자를 구속하는 기능은 상실하게 된다.
아직 껍데기만 남아버린 것은 아니다. 끄엉 주석과 찐 총리가 실제로 은퇴한 것은 규정이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작동한다는 증거다. 그러나 만약 2031년 15차 당대회에서 또 럼이 73세에도 또다시 특례를 적용받는다면, 그때는 사실상 ‘규정은 있으되 최고지도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상태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진핑이 칠상팔하를 폐기한 것의 베트남 버전으로 재현되는 셈이다.
현 시점에서 정확한 표현은 ‘형해화 과정에 있다’이다. 완전히 껍데기만 남아버리는 형해화와 집단지도체제의 건재 사이의 회색지대. 그리고 15차 당대회가 이 회색을 흰색 또는 검은색으로 결정할 분기점이다.
레 민 흥, 그리고 또 럼 이후
같은 날 오후 선출된 레 민 흥(Lê Minh Hưng) 총리도 시진핑과의 비교에서 흥미로운 대조점이 되겠다.

레민흥. 1970년생, 55세. 1975년 통일 이후 최연소 총리다. 국가은행(중앙은행) 총재(2016~2020)를 거쳐 당 중앙조직위원장(2020~2026)을 역임한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다. 아버지 레 민 흐엉(Lê Minh Hương)은 공안부 장관(1996~2002)을 지낸 바 있다. 또 럼의 핵심 기반인 공안 세력과도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55세라는 나이가 핵심이다. 14기를 마치면 60세, 15기(2031~2036)까지 가면 65세. 정년 내에 서기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나이다. 확정된 후계 구도는 아니다. 베트남에선 총리가 자동으로 서기장이 되는 경로는 없고, 2016년 응우옌 떤 중(Nguyễn Tấn Dũng) 전 총리가 서기장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전례도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윤곽은 가늠할 수 있다.
이것이 시진핑과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다. 시진핑 체제에서 20기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60후(1960년대 출생)’ 세대는 딩쉐샹(丁薛祥, 1962년생) 한 명뿐이다. 나머지 6인은 모두 1950년대 출생이다. 후계 구도를 의도적으로 불투명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진핑 이후를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준비하지 못한다. 또 럼 이후는 불확실하지만, 최소한 경로의 윤곽은 보인다.
조영남 교수는 시진핑·푸틴·에르도안 등의 장기집권을 ‘권력 연장 모델’로 묶으면서, 그 부작용으로 “기존 정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곤란”과 “새로운 권력승계 규범 수립의 어려움”을 지적한 바 있다. 레 민 흥의 존재가 베트남을 이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출구 없는 권력’과는 다른 구조를 보여준다.
경제라는 시험대
베트남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7.83%로, 1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다만 직전 분기(8.46%)보다는 둔화했다. 그래도 S&P글로벌레이팅스는 베트남이 인도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지위를 2028년까지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또 럼이 내건 목표는 10%다. 그리고 그 목표 앞에 두 개의 벽이 서 있다.
첫째, 이란 전쟁의 여파. 국제유가 급등으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4.65%까지 치솟았다. 블룸버그도 “원유 가격 상승이 또 럼의 10% 성장 꿈을 위협한다”고 짚었다. 10% 성장을 달성하려면 가계소비·투자·수출이 모두 ‘풀가동’되어야 하는데, 세 요소 모두 에너지 비용 상승의 타격을 받고 있다.
둘째, 트럼프 관세. 올해 1월 기준 베트남의 대미 무역흑자는 190억 달러로, 멕시코와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트럼프가 관세로 전 세계 나라들을 협박하던 시절, 베트남에 46%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이유다. 이후 예비합의에서 이 상호관세가 20%로 인하됐지만 중국산 우회수출엔 여전히 40%가 별도로 부과된다. (근데 이후 미국 대법원의 위헌 판결이 나오면서 Section 122(무역법, 전세계 일률 10% 관세) 적용과 Section 301 조사가 진행중이다.)
레 홍 히엡 ISEAS 선임연구원은 “또 럼에게 권력이 집중된 것은 정치적 리스크이기도 하지만,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양면을 지적했다.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전 주베트남 미국 대사도 AFP에 “또 럼이 전례 없는 권력을 가진 상황에서 개혁 프로그램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 양면성이 핵심이다. 권력 집중이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면 또 럼의 겸직은 정당화되고, 집단지도체제의 약화는 ‘효율적 의사결정’으로 재포장될 것이다. 반대로 경제가 실패하면 — 10% 성장은커녕 유가·관세·물가의 삼중고에 빠지면 — 당내 불만이 결집될 수 있다. 중앙위원회의 비밀투표, 군부의 조직적 자율성이 그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또 럼은 제2의 시진핑인가?
아니다.
시진핑은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 헌법에서 임기 제한을 삭제하고, 경쟁 파벌을 조직적으로 축출하고, 개인 사상을 당장에 각인했다. 규칙이 바뀐 뒤에는 다른 플레이어가 같은 규칙으로 그를 견제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또 럼은 규칙 안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서기장과 국가주석을 겸직하고, 반부패 캠페인으로 경쟁자를 줄이고, 행정개혁으로 정책 추진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임기 제한, 정년, 중앙위원회 투표, 파벌 간 교섭 같은 게임의 규칙은 바뀌지 않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같은 규칙으로 그를 견제할 가능성은 (어렵긴 해도) 열려 있다. 역할의 통합이지 체제의 전환은 아니란 소리다.
다만 ‘아직 아니다’와 ‘영원히 아니다’는 다른 말이다. ‘특례’의 반복은 관습법의 구속력을 갉아먹고 있고, 경쟁 파벌의 약화는 견제의 조건을 침식하고 있다. 이 과정이 2031년에 열릴 제15차 전당대회에서도 이어진다면 — 또 럼이 73세에도 특례를 적용받고, 임기 제한이 유명무실해지고, 겸직이 ‘새로운 정상’으로 고착된다면 — 그때 비로소 ‘시진핑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베트남 정치를 중국의 렌즈로만 보는 것은 이 나라의 고유한 정치적 역학을 지우는 일이다. 그러나 베트남의 제도적 특수성을 과신하여 권력 집중의 흐름을 무시하는 것도 또이또이한 실수다. 그러니까 이 두 실수 사이의 좁은 통로를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6~2031년 베트남 정치의 관전포인트기도 하다.
p.s.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베트남 헌법이니 당 조례니 한번도 안 찾아봤으니 역대급 권한이니 제2의 시진핑이니 했겠지만 서기장을 ‘서기관’으로 써놓는 것은 참… SBS 양반 명색이 지상파인데 너무 나이브한 것 아니오?
